회사도 인생도, 마지막을 결정하는 건 꿈의 크기 -유니콘 감별사 VC 김한준, 일의 의미를 말하다
Article| 11 Sep 2018개인적 참조를 위한 복사로, 중앙일보의 저작권 정책을 확인하고 준수하였습니다.
창업가들은 종종 창업을 “똥더미를 치우는 일 같다”고 표현한다. 일은 산더미고,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가 터진다. 그런 것들을 처리하다 보면 ‘왜 창업했는지’ 같은 큰 그림과 방향성은 잊히게 마련이다. 그런 사소한 일상 속에서 교훈을 얻고,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창업은 인생과 닮았다. 창업도, 인생도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창업이 인생과 비슷하다면, 인생에 대한 조언도 어쩌면 창업 코치가 잘해줄 수 있지 않을까. 국내 대표 VC(벤처캐피털리스트)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가 라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제목의 컨퍼런스에 선다. 일의 의미를 찾는 직장인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꿈의 정의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지식 콘텐츠 플랫폼 폴인(fol:in)이 준비한 9월의 스튜디오다.
김한준 대표는 ‘유니콘 감별사’로 불린다. 배틀그라운드로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은 블루홀, e커머스 업계 신흥 강자 쿠팡, 푸드 테크 선두 기업이 된 배달의 민족까지, 그가 투자한 회사들이 4~5년 사이 ‘유니콘 스타트업’이 됐다. 송금 서비스에서 종합 금융 서비스로 도약 중인 토스, 원룸에서 아파트로 사업을 확장 중인 직방, 글로벌 서비스로 떠오른 아자르 등 ‘넥스트 유니콘’으로 불리며 떠오르고 있는 스타트업에도 투자했다.
그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늘 같은 주문을 한다.
“더, 더, 더!”
그의 메신저 프로필 상태 메시지와 페이스북에서 늘 볼 수 있는 문구다.
창업가들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한 거죠. 그런데 그 꿈이 그 회사와 서비스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 같아요. 더 큰 꿈을 가지고, 그걸 향해 나아가라는 게 제 주문이에요. 그리고 이건 저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죠.
그에게 꿈과 일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관련 기사 : 폴인 9월 컨퍼런스 ‘왜 일하는가’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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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시는 건가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부동산이나 주식같이 다른 데 투자를 할 수도 있을 텐데요.
많은 사람이 학벌·외모·가정환경 같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삶을 제한해버려요. 그런데 스타트업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 바닥에선 누구나 스펙을 다 떼고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그걸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 투자자의 자본을 얻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역동적이고 건강해지는 거잖아요.
미디어가 성공한 창업가를 주로 다루다 보니 창업이 화려해 보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 창업가들의 일상은 아주 작고 의미 없는 ‘삽질’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걸까요?
‘이 문제만큼은 해결해보겠다’라거나 ‘이 서비스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식의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에 엄청난 성취감과 만족감이 있고요. 바로 그 성취감·만족감 때문에 연쇄 창업가가 되는 사람도 많아요.
그리고 그런 창업가를 지지하고 돕는 과정에서 대표님도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시는 거겠죠?
“그게 제가 다른 투자가 아닌 스타트업 투자에 투신한 이유겠죠.”
김한준 대표의 이력은 여느 창업가 못지않게 화려하다. 초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간 그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해 군인으로 일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군 엘리트를 키우는 사관학교 출신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 길을 마다하고 전역해 스탠퍼드 MBA를 거쳐 1996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 알토스벤처스를 창업했다.
이력 중 웨스트포인트 진학이 눈에 띕니다. 왜 군인이 되셨나요?
제 부모님의 시계는 이민 간 1976년에 멈췄어요. 보수주의자셨죠. 반면 저는 미국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에 충격을 받았어요. 무슨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놀라웠습니다. 민주주의는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가치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전역하신 건가요?
위계가 강하고 엄격한 군 조직문화가 잘 맞진 않았어요. 졸업 후 4년쯤 됐을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는데, 그게 결정적이었어요. 공산주의가 없어졌으니 더는 군에 남을 이유가 없었어요.
전역 후 MBA에 진학한 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왜 공산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경제 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민주주의와 거기에 기초한 경제 체제(자본주의)는 살아남았을까 오래 고민했어요. 공산주의는 성선설 위에 있다면, 자본주의는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가정하고 욕망을 최대한 보장하되 최소한의 수준으로 규제하자고 생각하는 것 같았죠. 저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 중 스타트업 투자라는 곳에 뿌리내린 건 왜인가요?
미 동부의 대학들이 금융 산업과 가깝고 보수적이라면, 서부 특히 스탠퍼드대는 정보기술(IT) 산업과 창업계에 가깝고 진취적이에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VC가 된 건 그런 학풍의 영향일 거예요. 교수님 소개로 벤처 투자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을 만난 게 구체적인 계기가 됐어요. 그 덕에 뜻이 맞는 친구들과 알토스벤처스를 창업했어요.
김한준 대표는 성공한 창업가를 비교적 초기부터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그런 그가 꼽은 ‘안 가본 길을 가는 사람’ 그리고 그 중 성공한 이들의 특징은 뭘까.
창업가마다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어요. 어떤 창업가는 몰입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창업가는 실행력이 압도적이고요. 그런데도 모든 창업가를 관통하는 특징이 있는데, 제 생각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배워나간다는 것 같아요.
김한준 대표가 투자한 창업가 중엔 앞선 사업을 실패한 이들이 적지 않다. 김 대표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거기서 배운 게 있다면, 그리하여 성장했다면 그는 더 좋은 창업가”라고 말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가 연사로 나서는 이번 컨퍼런스는 오는 20일 오후 7시 서울 성수동 카페 월 닷 서울(구 레필로소피)에서 열린다. 티켓은 폴인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정선언 기자 jng.sunean@joongang.co.kr